말도 많고 탈도 많은 파리 올림픽인 것 같네요. 특히 대한민국 양궁에서 감탄이~~~~ 너무 멋집니다!!! 우리 대한민국 선수단 너무 자랑스럽고 존경합니다. 올림픽 기간이다 보니 문득 드는 생각이 올림픽의 기원은 언제지? 그리고 왜 각국은 올림픽을 개최하려고 혈안일까? 또 올림픽을 하면 도대체 얼마가 벌어들이는 걸까? 하는 궁금증이 생겨서 한번 알아봤습니다. 간단하게 한번 알아보러 가시죠 출발~~~
1.올림픽의 기원
옛날 옛적에~~~~~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많은 그리스인들이 올림피아 신전을 가득 메우고 있고 대회에 참여한 선수들의 표정은 예나 지금이나 비장하긴 메한가지 이네요. 왜냐하면 우리가 대한민국 선수들이 금메달을따면(당연히 은메달,동메달도 대단합니다) 괜히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뿌듯해지고 그러잖아요.
이처럼 고대에서 선수들의 우승은 그나라와 도시에 자랑이 었습니다. 어깨 올라가는거죠. 그리고 우승한 선수에게는 영예러운'헤라클레스의 성스러운 올리브 나뭇가지'가 머리에 씌어집니다. 상금은 그당시 화폐인 500드라크마 입니다. 알아먹기 쉽게 표현하면 무려 양🐑 500마리를 살수 있는돈이죠. 앞에 설명한 시대배경은 4년에 한 번씩 열리던 고대 올림픽의 모습입니다
종목은 지금처럼 다양하지는 않았습니다. 단출했는데요. 달리기 경주, 던지기, 멀리뛰기, 레슬링 등 입니다. 고대에 올림픽이 언제 시작했는지는 정확하게는 알수 없습니다. 하지만 기원전 776년부터 올림피아 제전이 공식화 되었고 또 명맥을 계속해서 이어오다 로마 시대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금지한 이후에 사라졌다는 단초가 있습니다.
* 당시에는 로마는 기독교를 국교로 채택 했었습니다. 올림픽은 유일신인 하나님이 아닌 이교도들의 축제라는 이유로 금지됐습니다.
하지만 19세기에 들어서면서 올림픽이 부활하게 됩니다. 19세기 초반, 독일 학자들을 위시하여 고대 올림피아 유적지가 발굴되었고 때마침 그리스가 오스만투르크제국에서 독립 했기 때문입니다. 열정적인 민족주의자이고 르네상스적 소양이 가득했던 프랑스의 정치가 쿠베르탱은 올립픽부흥운동을 펼이게 됩니다. 그때 국제올릭픽위원회(IOC)가 만들어졌고 수많은 난관을 뚫고 1896년 제 1회 근대올릭픽이 그리스에서 열리게 되었습니다.
2.88서울올림픽
88서울올림픽보다 22년 전인 1966년, 서울은 제 6회 아시안게임(1970년)의 개최 도시로 선정되었습니다. 전쟁의 상흔을 극복하고 본격적으로 공업 성장이 이루어지는 시기였기 때문에 국제적인 스포츠 행사가 필요했죠. 하지만 그 이면에는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북한을 견제하기 위한 도구로서 한국의 위상을 높이는 도구로 쓰여졌다는 사실입니다. 그 당싱 북한은 국제 스포츠 무대에서 꽤 활약을 펼쳤습니다. 그당시 대한민국이 얼마나 가난했습니까. 1960년대 북한의 신금단 선수는 육상 400m, 800m에서 세계 신기록을 세웠을 뿐 아니라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그 축구강국 이탈리아를 꺾고 아시아 최초로 8강에 진출합니다.
당시 대한민국의 상황은 앞서 언급했든 가난했고 힘이 없었고 시설또한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그나마 규모가 어느정도 컸던 경기장은 동대문운동장, 효창공원의 축구장, 장충체육관 정도 였죠. 경기장뿐 아니라 각국의 선수당과 취재진이 오는데 그들이 머무를 숙소를 비롯해서 부대시설이 부족했습니다. 그리고 그당시 서울 청계천은 판자촌과 거지들이 판을 쳤고 낡고 무허가 건물들이 즐비했죠. 그리하여 안타깝게도 1968년 대회 2년을 앞두고 정부는 아시안게임 개최를 포기합니다.
인고의 시간을 고쳐 데뷔의 쓴맛을 맛본후 준비한 행사가 바로 88서울올림픽입니다. 당시 강남개발은 개규모 국제대회 개최를 고려하여 추진됐고 박정희 정권이었던 1971년 잠실지구에 80만 평의 '스포츠대단지 조성계획'이 발표됩니다. 이당시 세워진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 잠실 실내체육관, 잠실 야구장 등이 이 시기에 계획되어 세워진겁니다. 또 1980년 전두환 정권은 '한강종합개발계획'을 발표하여 한강에 대규모 시민공원을 조성하고, 강변에 도시고속도로를 건성했습니다. 이당시 세워진 건물들도 대단한데요. 광화분의 교보빌딩, 여의도 LG쌍둥이 빌딩 목동 아파트단지, 서초동 법원 건물 등이 이당시 세워진 건물들 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교통편도 몰라보게 나아졌습니다. 1987년 지하철 2·3·4 호선이 완공 됐습니다. 지하철 2호선은 종합운동장을 비롯하여 올릭픽 시설을 관통하는 순환선이었습니다. 그리고 3·4호선은 서울을 X자로 통과하며 2호선을 관통하여 서울 전역을 아우르는 지하철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당시 1987년 6월민주항쟁으로 민주화도 이뤄졌고 88서울올림픽은 '한강의 기적'을 입증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실제 올림픽 기간동안 300만명에 가까운 관광객이 방문하여 올릭픽 방영권 수입은 약 4억 달러에 달했습니다. 그리고 그당시 88서울올림픽은 공산주의 진영과 자유주의 진영 모두가 참여한 이색적인 올림픽이라서 세계의 관심을 한번에 받았죠. 그리고 서울 하면 1,000만명이나 되는 인구가 밀집된 대도시로 유명해진것도 1988년 올림픽 이후입니다.
3.올림픽의 경제적효과
다들 아시다 시피 88서울올림픽 이후에 대한민국에서 열린 국제 스포츠 행사는 바로 '평창 동계올림픽'입니다.
자랑스럽게도 동계·하계 올림픽을 모두 개최한 8번째 국가라고 합니다.
그리고 평창올릭픽의 경제적 효과가 무려 64조 원에 달한다는 기사가 숱하게 쏟아져 나왔습니다. 이는 2011년 현대경제연구원이 추산한 금액이고 직접적인 경제적 효과는 21조 1,000억 원 간접적 효과는 약 43조 8,000억 원으로 추산됐습니다
대회 개최에 소용되는 투자 금액이 7조 2,555억 원, 외국인 관광객이 1조 2,300억 원, 내국인 관광객 4,000억원을 쓰고 올림픽조직위원회의 대회 경비지출과 국내 기업들의 홍보 행사 지출액 규모는 3조 1,000억원으로 전망 했습니다. 이로인한 여파로 경제효과가 두배 정도로 추산했습니다.이에 대한 비판도 없지않습니다. 추산치로 겨제효과를 뻥튀기 해서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비판을 피할수는 없었죠. 하지만 실제적으로 경제적 효과가 있다는것은 부정할수없는 상식입니다. 왜 그렇다면 그렇게 세계적인 대회를 추진하려고 하겠습니까
평창올릭픽으로 1조 4,000억 원의 소비지출이 증가한것은 팩트이고 그결과로 인하여 1분기 국내총생산(GDP)이 0.2% 올랐고 각종 경제 지표에 상승효과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대외적으로 대한민국에 대한 이미지가 긍정적으로 비춰진것은 사실이니까요. 특히 K-음식에 대한 찬사가 줄을 이었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남은 경기도 긴장하지말고 또한 부담을 내려놓고 화이팅 하십시요 대한민국 선수단 다시한번 화이팅 입니다
이외에도 다양한 정보들도 있으니 참고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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